전쟁에 8년간 쌓은 공든 탑 무너뜨리는 러 중앙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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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8년간 쌓은 공든 탑 무너뜨리는 러 중앙은행장

한설아 0 입력  / 수정

WSJ "나비울리나 총재, 세계시장 편입→제재 피해 최소화로 U-턴"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수년간 러시아를 세계 경제에 통합하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WSJ은 엘비라 나비울리나 총재가 8년의 재직 기간 내내 러시아 통화정책을 현대화하고 세계 시장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해 왔으나 전쟁 발발 후 6주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쟁 경제를 유지하는 새 임무를 위해 그동안 해온 일들을 대부분 저버렸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20년 동지로서 그는 루블화를 안정시키고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등 서방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 노력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가 내놓은 일련의 긴급 조치로 급격히 가치가 하락했던 루블화는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지난 8일에는 금리를 20%에서 17%로 낮춰 금융시장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루블화는 현재 많은 거래에서 유용성이 많은 제한받고 있어 루블화의 회복은 공허한 승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루블화 안정을 위해 해외 송금을 제한하고 외국 고객과 거래하는 러시아 기업들에 달러 등 경화(국제결제에 사용될 수 있는 통화) 수입의 80%를 루블화로 바꾸도록 해 경제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장벽을 세웠다.


    이런 조치들은 2006년 러시아가 자본 통제를 폐지하고 2014년 자신이 루블화를 자유 변동환율 통화로 만들었던 것과 같은 수년간 추진한 자유주의 정책을 명령과 통제 방식으로 바꿨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 은행가 출신으로 현재 런던에서 국제자산관리업체를 운영하는 안드레이 모브찬은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수년간 러시아를 세계 경제에 통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며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2월 24일) 후 갑자기 정반대의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급격한 물가 상승에 직면해 있다. 3월 인플레이션율은 연 기준 16.7%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 경제 전체 상황도 좋지 않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수입이 막히고 서방 기업 수백 개가 러시아를 떠나면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으며 공장들은 부품 부족으로 조업을 중단했다. 영국 런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러시아 경제가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WSJ의 나비울리나 총재 인터뷰 요청을 바쁜 일정을 이유로 거부했다.


    WSJ은 많은 관측통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의 진보적 엘리트 지식층이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상황에서 나비울리나 총재가 왜 계속 푸틴 대통령 편에 서서 함께하는지 의아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러시아 정부 관리들과 달리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공개적인 지지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쟁 전 그와 접촉한 일부 인사들은 나비울리나 총재가 직위 때문에 마지못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크렘린궁 충성파로서 자신의 진짜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와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책임자를 역임한 파니코스 데메트리아데스는 "처음에 사람들은 나비울리나 총재를 의혹의 시각으로 봤으나 이제 그가 한 일들을 볼 수 있다"며 "그는 푸틴 오케스트라의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동쪽 1천120㎞의 산업도시 우파에서 소수민족인 타타르족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나비울리나 총재는 모스크바국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전쟁 전에는 서방 투자자들과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들로부터 러시아 금융계 인사로는 드물게 깨끗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학창 시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심취해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으며 1990년대 대부분을 기업단체와 러시아 경제부에서 재직하면서 영향력 있는 진보 개혁주의자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1999년 푸틴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만드는 싱크탱크에 참여하면서 푸틴 그룹에 참여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푸틴의 경제 정책 그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비울리나 총재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발해 사임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런 2013년부터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나비울리나 총재는 사임하는 대신 푸틴 대통령이 3월 하순 재임명 제청안을 제출, 3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마이클 맥폴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처음에 나비울리나 총재가 전쟁에 반대해 사임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으나 그가 사임하지 않자 그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는 독특한 전문성으로 푸틴 대통령이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을 야만적으로 죽이는 데 필요한 돈을 대고 있다"며 "전쟁에 반대해 사임하거나 전쟁을 비판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신도 이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설아 기자 / 더인사이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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